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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공론을 벗어나기 위해 경복궁으로 갔다인사이트 2026. 5. 2. 17:34
앱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으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은 보통 화면을 그리는 일이다. 어떤 기능을 넣을지, 어떤 버튼을 배치할지, 어떤 기술을 쓸지 고민한다.
나 역시 그랬다.
외국인이 한국을 여행할 때 겪는 불편함을 해결하는 앱을 만들고 싶었다. 번역, 지도, 예약, 날씨, 여행 일정, 문화 안내 같은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정말 외국인들이 실제로 겪는 문제일까?”
“내가 상상한 불편함과 현장에서의 불편함은 같을까?”
아이디어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은 책상 앞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직접 현장으로 가보기로 했다.부채 30개를 들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2026년 4월 30일, 동대문 완구 도매 시장에서 부채 30개를 샀다. 설문에 응해준 외국인들에게 작은 선물로 드리기 위해서였다.
부채 30개를 과연 다 기념품으로 줄 수 있을까…? 고민보다go!
거창한 리서치 예산도, 큰 팀도 없었다. 그냥 직접 가서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많이 망설였다.
“관람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내가 갑자기 다가가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직접 부딪혀볼 수 있을까.”
“정말 만들고 싶은 서비스라면,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부터 피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청계천에서 쉬고 있던 외국인들에게 첫 설문을 받았고, 이후 경복궁으로 향했다.현장은 화면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려줬다
경복궁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한복을 입은 수많은 외국인들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더운 날이었다…! 부채 사길 잘 했다!!!
그 장면은 단순히 “관광객이 많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단순히 정보를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특별한 기억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점이 보였다.
사진을 찍고, 한복을 입고, 궁궐을 걸으며, 자기만의 여행 장면을 만들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내가 만들고 싶은 앱의 방향도 조금 더 선명해졌다. 단순히 여행 정보를 나열하는 앱이 아니라, 외국인이 한국에서 만나는 순간들을 더 편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서비스여야 했다.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불편함들이 있었다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예상한 것과 겹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10분 가량을 나와 아이디어 대화를 해주신 고마운 런던 부부 🇬🇧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언어 장벽이었다.
단순히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외국인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문장 번역”보다 “상황 이해”에 가까웠다.
식당에서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메뉴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는지, 얼마나 매운지, 줄을 왜 서는지, 현지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같은 문제들이었다. 한국인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상황들이 외국인에게는 작은 불안이 될 수 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문화와 에티켓에 대한 니즈였다.
나는 처음에 여행 앱이라고 하면 지도, 번역, 예약 같은 기능을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기서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지”,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한복을 입고 어디까지 들어가도 되는지” 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불안이 존재했다.
이건 정보 부족이라기보다, 낯선 문화 안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까웠다.
한국 문화를 한국인보다 좋아하는 프랑스에서 온 두 소녀 🇫🇷
그리고 아주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예를 들어 화장실.
한국인은 지하철역, 백화점, 큰 카페, 공공기관 근처에서 화장실을 찾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그런 암묵지가 없다.
우리에겐 너무 당연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여행자에게는 실제 문제였다.중요한 것은 기능이 아니라 방법론이었다
이번 현장 설문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것은 특정 기능 하나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중요한 배움은 이것이었다.
“좋은 아이디어는 머릿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계속 수정된다.”
책상 앞에서 생각할 때는 모든 것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현장에 나가면 질문이 바뀐다.
“이 기능이 멋진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정말 필요로 하는가?”를 보게 된다.
“어떤 기술을 넣을까?”가 아니라
“이 사람이 한국에서 덜 불안하게 행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이번 리서치는 단순한 설문조사가 아니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가 실제 사람들의 경험과 연결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첫 번째 검증 과정이었다.현장에서 얻은 기준
이번 경험 이후, 앱을 바라보는 기준도 조금 달라졌다.
내 앱은 단순히 많은 기능을 담는 앱이 되면 안 된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마주치는 낯선 순간을 자기 언어로 이해하고, 바로 행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여야 한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전세계인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번역도 중요하지만, 상황을 이해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도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지역적 맥락을 설명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보도 중요하지만, 사용자의 불안을 줄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국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기능의 개수가 아니라, 낯선 곳에서 느끼는 막막함을 얼마나 줄여줄 수 있느냐라고 생각한다.앞으로도 직접 확인하며 만들고 싶다
이번 경복궁 설문은 아주 작은 시작이다. 30개의 부채와 몇 번의 용기로 시작한 현장 리서치였다.
하지만 이 경험은 나에게 꽤 큰 확신을 줬다.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는 책상 위에서만 기획해서는 안 된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실제로 어디서 막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순간을 더 즐겁게 만들고 싶어 하는지 계속 직접 확인해야 한다.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앱 화면을 설계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실제 맥락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도 최대한 직접 움직이며 만들고 싶다. 현장에서 질문하고, 관찰하고, 틀렸던 가설을 인정하고, 다시 고치는 방식으로.
탁상공론을 벗어나는 것.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앱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